철학 인사이트 및 칼럼 | PhiloReader

Philosophy Insights

현대인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깊이 있는 철학 칼럼을 연재합니다.

Column

니체의 영원회귀와 현대인의 번아웃

작성자: 김이성 (PhiloReader 수석 연구원) | 2024. 05. 20
A thoughtful person sitting on a park bench under a large spreading oak tree in autumn. They are deeply immersed in a philosophy book, fallen orange leaves on the ground, soft bokeh background, peaceful and intellectual atmosphere.

현대 사회에서 '번아웃(Burnout)'은 감기처럼 흔한 질병이 되었습니다. 끊임없는 성과 압박, SNS를 통한 비교, 무한 경쟁 시스템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소진시킵니다. 니체의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 사상은 이러한 현대인에게 충격적이면서도 근본적인 치유책을 제시합니다.

영원회귀란, 당신이 살아온 이 삶이 그대로, 순서 하나 바뀌지 않고 무한히 반복된다는 사상입니다. 고통, 기쁨, 권태, 그 모든 순간이 영원히 되풀이됩니다. 이 사상을 처음 접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망을 느낍니다. "이 지긋지긋한 야근과 피로가 영원히 반복된다고?" 이것은 가장 무거운 짐입니다.

하지만 니체는 여기서 '아모르 파티(Amor Fati)', 즉 운명애를 이야기합니다. 영원히 반복되어도 좋을 만큼, 바로 이 순간을 긍정하라는 것입니다. 번아웃은 자신의 삶을 긍정하지 못하고, 미래의 어떤 목표(승진, 부, 은퇴)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현재가 미래의 수단으로 전락할 때, 영혼은 고갈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미래에 무엇이 될 것인가?"가 아니라, "이 순간이 영원히 반복되어도 나는 이것을 선택할 것인가?"입니다. 이 질문은 삶의 우선순위를 완전히 재편합니다. 타인의 시선 때문에 억지로 하는 일들은 영원회귀의 시험대를 통과할 수 없습니다. 오직 내면의 깊은 충동과 기쁨을 따르는 행위만이 "그래, 한 번 더!"라고 외치게 만듭니다.

Review

스토아학파: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놓아버리는 용기

작성자: 박지혜 (인문학 작가) | 2024. 05. 15
Close-up macro shot of an antique leather-bound book opened to a page with elegant serif typography. A vintage brass bookmark is tucked between the pages, dark moody lighting, high texture detail, scholarly aesthetic.

에픽테토스는 노예 출신 철학자였습니다. 그는 신체의 자유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보다 자유로운 정신을 가졌습니다. 그의 철학의 핵심은 '통제 이분법(Dichotomy of Control)'입니다. 세상의 일들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명확히 구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불안과 분노는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 할 때 발생합니다. 타인의 평판, 날씨, 경제 상황, 이미 벌어진 과거의 실수, 그리고 언젠가 다가올 죽음. 이것들은 우리의 의지 영역 밖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상사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하느라 밤잠을 설치고, 주식 시장의 등락에 일희일비합니다.

스토아학파는 말합니다. "당신의 의지만이 당신의 것입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의 생각, 신념, 그리고 행동하려는 의지뿐입니다. 외부의 사건은 그 자체로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해석'이 우리를 괴롭힐 뿐입니다.

이 지혜를 현대 직장 생활에 적용해 봅시다.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나 클라이언트의 반응은 100% 내 통제 하에 있지 않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성실히 수행하는 과정뿐입니다. 결과는 운명에게 맡기고(Amor Fati), 과정에서의 탁월함(Arete)을 추구할 때 우리는 결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이것이 진정한 마음의 평화, '아타락시아(Ataraxia)'입니다.

Ethics

공리주의의 딜레마와 AI 시대의 윤리

작성자: 최민석 (윤리학 박사) | 2024. 05. 08
A quiet evening scene with a person sitting in a comfortable velvet armchair by a fireplace. They are reading a book, a warm glow from the fire illuminating their face and the pages, cozy and contemplative mood, realistic oil painting style.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제러미 벤담이 주창한 공리주의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근간이 된 강력한 원리입니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현대 사회에서 공리주의는 가장 합리적인 의사결정 도구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자율주행 자동차와 인공지능(AI)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우리는 공리주의의 차가운 딜레마에 다시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유명한 '트롤리 딜레마'를 자율주행차 알고리즘에 대입해 봅시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율주행차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5명의 보행자를 칠 것인가, 아니면 방향을 틀어 탑승자 1명을 희생시킬 것인가? 공리주의적 계산에 따르면 5명을 살리기 위해 1명을 희생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렇다면, '위급 상황 시 탑승자를 희생시킬 수 있는 차'를 구매할 소비자가 있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공리주의가 간과하기 쉬운 '개인의 권리'와 '인간의 존엄성' 문제를 마주합니다. 칸트는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무고한 한 사람의 생명을 계산의 도구로 삼는 것은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AI 기술이 발전할수록 윤리적 판단은 기계에게 위임될 것입니다. 하지만 기계는 계산할 뿐, 책임지지 않습니다. 결국 그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인간의 철학적 깊이가 기술의 방향을 결정할 것입니다. 우리는 효율성이라는 미명 하에 인간성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절박한 이유입니다.